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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보부상 인생을 알아보다

by 다루찡 2022.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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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상 인생을 알아보다

 

학창 시절 역사에 큰 관심이 없어 보부상이라는 역사 속의 직업을 이동하는 상인이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같이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새로운 것을 배우곤 하는 데요. 이번에 내포보부상촌이라는 곳으로 놀러 갔다가 아이가 한 질문에 대답 한마디도 못하고 흐지부지 말하고 돌아서 버린 부모인 나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면서 모르는 부분은 아이와 같이 공부해보겠다는 결심을 해봅니다. 처음 공부로 보부상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보부상 삽화모습
보상과 부상을 합친 보부상 삽화 출처: 내포보부상촌안내지

 

보부상의 정의

 

크게 보부상의 뜻은 보상과 부상이 합쳐진 말입니다.

- 보상이란? 포목이나 원단, 장신구 등 보자기에 싸서 들거나 질빵에 걸어서 매고 다니면서 판매하는 상인으로 간단하게 매고 다니는 짐이라 봇짐장수라고 불렸으며 앉아서 판매를 하는 상인을 말합니다.

- 부상이란? 도기나 칠기, 건어물 등 물품의 특성상 크기가 크기 때문에 지게에 물건을 짊어지고 판매하는 상인으로 등에 짐을 싣고 다녀 등짐장수라고 불렸으며 서서 판매를 하는 상인을 말합니다.

보부상들은 각 지방에 일용품을 공급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면 판매했습니다. 보부상이 메고 지는 봇짐과 지게를 통해서 각 지방의 특산물들이 다른 여러 지역으로 전해지는 역할은 하였습니다.

 

보부상의 소지품은 이동하며 판매하는 사람으로 여러 가지를 가지고 다녔는데 그때의 모자인 머리에는 패랭이를 쓰고 한 손에는 '물미장'이라는 지게 작대기를 들고 조선 팔도를 다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신분을 밝히는데 쓰였던 증표인 '신표'와 먼 거리를 걸을 때 신는 여분의 신발인 미투리나 짚신, 휴식을 취할 때 쓰이는 담뱃대 같은 물건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봇짐, 지게, 박다위와 박다위 조이개처럼 짐을 나를 때 쓰이는 도구와 주판이나 저울 같은 계산하는 도구와 '도량형', '산가지'라고 불리는 계량하는 도구까지 소지품에는 없는 게 없는 형태였습니다.

 

패랭이모자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양연구원)

보부상 하면 빼놓지 못하는 게 패랭이인데 역사 이야기 중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려 말, 이성계가 교전을 하던 도중 부상을 당했는데 보부상 중에서 목화 장수의 목화로 응급상황에서 급하게 치료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태조는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패랭이의 왼쪽에 목화송이를 달게 하였는데요. 그 후에 병자호란 때 피난을 하던 인조가 부상을 당했을 때 솜 장사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다시 인조는 그 솜 장사에게 포상을 하면서 반대편인 오른쪽에 목화송이 하나를 더 달 수 있게 하였고, 그 후부터 보부상의 패랭이에는 양 쪽 모두에 목화송이가 달리게 되었다는 역사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위에 사진은 고려말 이전의 패랭이 모습이고 인조 이후에는 맨 처음 그림처럼 양 쪽에 목화송이를 달고 있는 모습을 주로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보부상 관련 용어

 

- 장시

장시는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를 일컫는 말로 5일 만에 열리는 시장 현재 시대에는 오일장의 초시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주변의 농민이나 수공업자, 상인들이 일정한 날에 정해진 장소에 모여서 물건을 교환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조선 중기인 16세기에 접어들면서 삼남 지방으로 장시가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요. 가까운 마을들끼리 연결이 되어 시장을 열었는데 초기에는 열흘에 한 번씩 장시가 열렸다가 점차 5일째 해당되는 날로 장시의 장날로 정해서 5일장이 자리가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조선의 시장은 그 당시에 생활하던 서민이 유일하게 소비하는 소비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시가 열리는 장날이 되면 다양한 서민들이 모이게 되어 농경사회의 단조로운 생활에서 벗어나 놀거리 먹거리가 가득한 그날에 지역 주민의 생활욕구를 채우는 기능들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그때 장시가 발달하면서 장시와 장시 사이의 그 지역을 돌며 여러 가지 물품을 판매하는 보부상이 탄생되었다고 합니다.

 

- 삼남지방

삼남지방이란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를 함께 지칭하는 명칭을 말합니다. 조선시대의 삼남지방은 농업과 조운, 군사적인 의미에서 중요한 위치였으므로 그곳에서 상업활동이 주로 많이 일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 내포

내포는 바다가 육지 안흥로 휘어 들어간 충남의 서부지역의 명칭으로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고을 열 곳을 일컬어 말했는데요. 삽교천과 가야산을 중심으로 홍성, 예산, 당진, 서산, 태안, 보령, 아산, 서천 지역을 말합니다. 특히 내포는 서해안을 통하여 한양이나 경기로 물자 교류가 많았고, 들판이 너른 평원지역에 산도 높지 않아서 농업 생산량이 좋아 장시의 교류가 활발한 곳이었습니다. 또 아산만으로 연결이 되는 삽교천과 무한천 수로의 포구를 중심으로 해서 곡물이나 생필품의 교류가 활발하여 밀물, 썰물을 이용한 선박의 대량 물자 수송이 가능했기 때문에 장시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보부상 역사공부를 마치며

 

오늘 보부상에 대하여 어느 정도 배웠기 때문에 이제는 아이들에게 자신 있게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설명을 하기 위해 다시 한번 내포보부상촌을 방문해보려 합니다. 이번에는 보부상 박물관에도 한번 가보려고요.

보부상이란 단순이 이동하면서 판매를 하는 상인으로만 알았는데 보상과 부상이라는 개념이 다르다는 것과 그들의 짐 안에 엄청나게 많은 짐들로 가득 차 있음에도 이런저런 지역을 걸어 다니면 판매했을 그분들을 생각하니 지금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고생스러운 직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떤 면에서는 그분들만의 즐길 거리도 넘쳐났던 정겨웠던 그때의 장터를 상상하면서 요즘 같은 각박한 사회에서 따뜻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현대의 보부상은 어떤 분들일까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일정한 날짜에 모여서 장사를 하시는 프리마켓이나 야시장 같은 셀러분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다음 주에 열리는 프리마켓을 좀 더 관심 있게 방문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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